
(사진 설명 : 아직도 380년의 세월을 꿋꿋하게 이기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평창 운교리 밤나무. 촬영=2026년 5월 4일)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방림면 운교리에는 우리나라 밤 산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특별한 밤나무가 서 있다. 천연기념물 제498호로 지정된 평창 운교리 밤나무다. 지정 당시 수령 약 370년으로 평가된 이 밤나무는 2026년 현재 약 390년의 세월을 견디며 생존했다.
조선 숙종 시대부터 한 자리에 뿌리를 내려 국내에 알려진 재래종 밤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노거수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높이 약 16m, 줄기 둘레 약 6.5m에 이르는 이 거목은 단순한 자연유산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역 주민들의 삶과 함께해 왔고, 한국 밤나무의 유전적 특성을 간직한 살아있는 기록물이다.
예로부터 ‘영명자(榮鳴玆)’라는 이름으로 불릴 만큼 뛰어난 나무로 알려졌으며, 한때는 해마다 수 가마니의 밤을 생산할 정도로 생산성도 우수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적인 밤 생산국 가운데 하나다. 충남 부여와 공주, 청양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서 밤이 생산되고 있으며, 밤은 여전히 중요한 산림소득 작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산업의 가치가 단순히 생산량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 자연 속에서 살아남은 재래종 유전자원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일 또한 미래 밤 산업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평창 운교리 밤나무의 존재는 특별하다. 이 나무는 수백 년 동안 혹독한 겨울과 가뭄, 병해충을 견디며 살아남았다.

현대 품종 개량 기술이 없던 시절 자연선택을 통해 살아남은 유전자원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세계 각국이 토종 수종과 재래종 유전자원의 중요성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로 미국은 1904년까지 미동부 산림을 대표했던 미국 밤나무 약 40억 그루가 병해로 멸종되면서 복원 사업에 수십 년의 노력과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붓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자연에 여전히 살아있는 재래종 노거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자산이고 한편으로는 행운이다. 평창 운교리 밤나무는 한국이 보유한 밤나무 유전자원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나무가 주는 의미는 ‘시간’에 있다. 390년 전 작은 밤송이에서 싹튼 나무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인간의 수명을 훨씬 뛰어넘는 자연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조선시대 농민들이 바라보았던 나무를 오늘날 우리가 같은 모습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한국 밤 산업은 지금 소비 감소와 생산 인구 고령화라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생산량과 가격만을 논해서는 안 된다. 평창 운교리 밤나무처럼 수백 년의 시간을 견뎌온 유전자원과 역사, 그리고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평창 운교리 밤나무는 단순한 천연기념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밤 산업의 뿌리이자 역사이며, 미래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390년을 살아온 이 한 그루의 나무는 지금도 묵묵히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좋은 나무는 수확보다 먼저, 시간을 견디는 힘에서 시작된다.”(한국밤산업신문=유명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