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2만9,673톤에서 2024년 3만7,010톤, 27년 만에 생산량 71.5% 감소
일본은 ‘잘 까지는 밤’을 국가 육종 목표로 삼아 ‘포르탄’ 개발
노령목 갱신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다시 심을 것인가’ 산림청, 이제 품종으로 답해야
대한민국 밤 산업에는 분명 전성기가 있었다. 산림청 「임업통계연보」를 원자료로 한 통계자료를 보면 국내 밤 생산량은 1980년 4만2,826톤에서 1990년 8만5,043톤으로 증가했고, 1997년에는 12만9,673톤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2020년 4만3,017톤, 2021년 4만4,648톤, 2022년 4만3,220톤, 2023년 3만9,797톤에 이어 2024년에는 3만7,010톤까지 감소했다. 1997년과 비교하면 27년 만에 9만2,663톤, 약 71.5% 줄어든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2025년 생산량을 3만9,190톤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소 회복되더라도 1990년대와 비교하면 생산기반이 크게 축소됐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단순히 ‘어떻게 다시 10만 톤을 생산할 것인가’가 아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은 어떤 밤을 육종해왔는가. 그리고 노령 밤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앞으로 20년, 30년을 책임질 어떤 품종을 다시 심을 것인가. 이 질문에 산림청이 답해야 할 차례다.
문제는 ‘육종을 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육종했느냐’다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이 밤 육종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오랫동안 밤나무 신품종을 육성해왔고 재배관리, 저장, 가공, 박피기술 등에 대한 연구도 수행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은 더 분명해진다. 그 오랜 연구와 육종의 결과가 오늘날 밤 농가와 가공업체, 소비자가 체감할 수 있는 어떤 경쟁력으로 나타났는가. 과거 밤 육종에서는 수량성과 과실 크기, 품질, 병해충 저항성 등이 중요했다. 이러한 특성은 지금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이제 밤(栗) 선호 트렌드가 달라졌다. 소비자는 맛있는 밤뿐 아니라 먹기 편한 밤을 원한다. 가공업체는 크고 좋은 밤뿐 아니라 쉽게 까지고 적은 비용으로 가공할 수 있는 밤을 원한다. 밤 산업에서 가장 큰 불편 가운데 하나가 껍질이다.
특히 과육에 붙어 있는 속껍질인 율피는 소비자에게는 번거로움이고, 가공업체에게는 시간과 인건비다. 그렇다면 국가 밤 육종의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얼마나 크고 많이 열리는가’에서 ‘얼마나 쉽게 까지고 가공되는가’까지 나아가야 한다.
일본은 ‘까기 힘든 밤’을 육종으로 해결했다.
일본의 사례는 한국 밤 육종정책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일본의 국립연구개발법인 농업·식품산업기술종합연구기구(NARO·농연기구)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가 농업·식품 연구기관이다. NARO의 과수 연구진은 일본 밤의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율피가 잘 벗겨지지 않는 문제 자체를 국가 육종의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물이 ‘포르탄(ぽろたん·Porotan)’이다.
포르탄은 1991년 교배를 시작해 1999년 선발됐으며, 2000년부터 일본 14개 현 15개 시험장에서 지역적응시험을 거쳐 2005년 신품종으로 육성됐다. NARO의 국가 밤 시험에서도 포르탄은 율피가 쉽게 벗겨지고 식미가 좋은 품종이라는 점 때문에 신품종으로 선정됐다.
수치로 보면 차이는 더욱 선명하다. NARO의 품종시험에서 포르탄은 구웠을 때 율피 박피율이 97%였다. 비교 품종인 ‘단자와’는 41%, ‘구니미’는 14%였다. 중국밤 계통인 ‘코난36’의 100%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
즉 일본은 소비자가 밤을 먹으면서 느끼는 ‘까기 어렵다’는 불편을 육종으로 해결하려 한 것이다.
포르탄에서 끝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이 포르탄 한 품종에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NARO는 이후 포르탄과 비슷하게 율피가 쉽게 벗겨지는 후속 품종 ‘포로스케(ぽろすけ·Porosuke)’를 개발했다.
포로스케는 2004년 교배해 2009년부터 지역적응시험을 거쳤고 2018년 품종 등록됐다. 포르탄과 서로 수분이 가능해 박피성이 좋은 일본 밤의 공급기간을 확대할 수 있도록 육성됐다.
최근에도 일본의 박피성 육종 연구는 이어지고 있다. 연구진은 박피성 유전자원을 넓히기 위해 일본 재래종과 야생 개체까지 조사하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한 유전자원의 박피성이 87%로 나타나 포르탄의 94%에 근접한 것으로 보고됐다.
포르탄은 하나의 품종이 아니라 일본 밤 육종의 방향을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그렇다면 ‘잘 까지는 국산 밤’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에 묻는다. 국립산림과학원은 2006년 이미 「한국의 밤나무 품종」이라는 연구서를 통해 국내 주요 재배품종과 토종밤 우량개체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고, 이후에도 밤 신품종 육성을 계속해왔다.
그렇다면 현재 농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박피성을 대표할 만한 국산 밤 품종은 무엇인가. 그 품종은 기존 주요 품종보다 얼마나 잘 까지는가. 전국에 몇 ha가 심어져 있는가. 묘목은 농가가 쉽게 구할 수 있는가. 가공업체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가. 소비자는 시장에서 그 밤의 차이를 체감할 수 있는가.
연구실에 품종이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농가가 심고, 기업이 가공하고, 소비자가 사 먹을 수 있는 ‘잘 까지는 국산 밤’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만약 이미 개발돼 있다면 왜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지 설명해야 한다.
없다면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 밤 육종에서 박피성이 어느 정도의 우선순위를 가졌는지부터 답해야 한다.
박피기술을 연구했다면 더욱 묻게 된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밤 껍질 문제를 몰랐던 것도 아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발간한 「교잡종 밤나무 품종 육성 및 재배 관리 기술」에는 별도의 ‘밤 박피기술 개발’과 ‘박피밤 품질 개선 기술 개발’ 항목까지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더욱 분명해진다. 박피가 밤 산업의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고 기술까지 연구했다면, 왜 그 문제를 품종 자체에서 해결하는 박피성 육종은 우리 밤 산업의 대표적인 성과로 자리 잡지 못했는가.
기계로 어렵게 껍질을 벗기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러나 애초부터 쉽게 벗겨지는 밤을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해결책이다. 가공기계를 바꾸는 것과 밤 자체를 바꾸는 것은 다르다. 이제 국가 밤 연구개발의 무게중심을 다시 검토할 때다.
노령목을 베기 전에 ‘새 품종’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 문제는 밤나무 노령화 때문에 더욱 절박하다. 오래된 밤나무를 갱신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하지만 노령목을 베어내는 것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자리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
지금 심는 밤나무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한국 밤 산업의 생산기반이 된다. 따라서 노령목 갱신사업을 기존 품종을 새로운 묘목으로 바꾸는 수준에서 끝내서는 안 된다. 수량성과 품질뿐 아니라 박피성·가공적성·저장성·기후 적응성·병해충 저항성·기계화 가능성을 갖춘 차세대 국산 품종을 먼저 준비하고 이를 생산기반 갱신과 연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30년 된 밤나무를 베어내고 다시 30년을 키울 나무를 심으면서, 어린 묘목으로만 바꾼 채 과거의 밤산업 구조를 또다시 30년간 이어가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산림청은 이제 ‘품종’으로 답해야 한다
1997년 12만9,673톤이었던 국내 밤 생산량은 2024년 3만7,010톤으로 줄었다. 하지만 목표가 다시 13만 톤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생산량이 4만 톤이어도 농가가 더 높은 소득을 올리고, 가공기업의 생산비가 낮아지고, 소비자가 더 편하게 먹으며, 국산 밤이 높은 부가가치를 만든다면 그것이 새로운 전성기다.
그리고 그 변화의 출발점 맨 앞에 육종사업이 있다. 그래서 산림청과 국립산림과학원에 다시 묻는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국가 밤 육종에서 박피성은 몇 번째 목표였는가. 현재 농가에 보급할 수 있는 박피성이 뛰어난 국산 품종은 무엇인가.
그 품종의 객관적인 박피율은 얼마이며, 전국에 몇 ha가 보급돼 있는가. 없다면 언제까지 개발해 농가에 보급할 것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노령 밤나무를 베어낸 그 자리에 앞으로 어떤 품종을 심을 것인가.
문제는 산림청이 밤 육종을 했느냐, 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다. 무엇을 목표로 육종했고, 그 결과 농가와 소비자의 손에 어떤 밤을 쥐여줬느냐는 것이다. 한국 밤 산업에 필요한 것은 과거 13만 톤의 추억이 아니다.
앞으로 30년 동안 농가가 심고, 기업이 가공하고, 소비자가 찾을 ‘차세대 국산 밤’을 만드는 것이다. 노령목을 베어낼 시간이다. 그 자리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이제 산림청이 ‘품종’으로 답해야 할 차례다. / 유명근 기자